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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Gosari Jangma

고사리 장마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제주의 4월은 고사리 장마의 계절이다. 양치류가 올라올 때 내리는 비를 그 땅의 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 사흘을 달렸다. 마르려고 달린 게 아니라, 젖기 위해 달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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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 이승악, 수악길

오후 한 시 반에 들목에 도착했다. 비는 이미 내리고 있었다.

이승악 오름의 들머리는 좁다. 발을 들이는 순간 빛이 줄어든다. 곶자왈은 그런 곳이다. 들어가면 위로 보이는 게 줄어들고, 아래로 보이는 게 늘어난다. 발끝에 닿는 양치류, 검은 흙, 떨어진 가지. 수악길과 합류하는 구간부터 한적한 능선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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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 사이로 빛이 들어왔다 사라졌다. 그 빛이 들어오는 짧은 순간을 보려고 자꾸 멈췄다.

9.88km를 두 시간에 걸쳐 갔다. 달리기에는 느린 시간이지만, 이 길에서는 이게 페이스였다. 가다가 멈춰서 나무를 보고, 다시 가다가 멈춰서 양치류를 봤다. 그러는 동안 신발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비를 머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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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로 돌아왔을 때 옷에서는 흙냄새가 났다.

수악길·이승악 오름 너머의 고사리 장마

수악길·이승악 오름 너머의 고사리 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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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 가시리

다음 날 가시리에 도착했을 때 안개가 풀밭을 다 덮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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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의 좁고 닫힌 감각이 가시리에서는 한꺼번에 풀린다. 사방이 트여 있다. 멀리 산방산이 흐릿하게 서 있다. 풀밭은 비에 젖어 검은 초록이 되어 있었다.

새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바람만 있었다. 풀이 한쪽으로 누웠다 다시 일어서고, 누웠다 다시 일어섰다. 그 리듬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한 바퀴를 돌아 출발점에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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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내려다본 풀밭은 한 사람의 점이 박힌 한 장의 종이 같았다.

가시리

가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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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 사계해변

마지막 날 사계로 갔다.

바람이 세서 파도가 검은 모래를 두드리고 있었다. 이끼는 간조에만 보이는 자리에 깔려 있었고, 화산재가 굳어 만들어진 검은 바위들은 시간이 만든 구멍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산방산이 한쪽 끝에 서 있고, 반대쪽으로는 바다가 끝없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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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기도 했고 멈추기도 했다. 파도 소리에 박자를 맞추다가, 바위 위에 앉아 손으로 표면을 만져보다가, 다시 발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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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회암은 차가웠고 거칠었다. 만져보지 않으면 모를 감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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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 끝에서 돌아섰을 때 사흘 동안 무엇을 통과해온 건지 잠깐 알 것 같았다. 비도, 안개도, 파도도 같은 것의 다른 모습이었다.

해안을 차례로 걷는 날

해안을 차례로 걷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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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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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그 계절을 부르는 이름이 있다. 양치류가 올라올 때 내리는 비. 길지 않다. 한 달도 안 된다. 그동안에만 존재하는 이름이다.

그런 이름이 있다는 건, 그 시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뜻이다. 비를 보고, 양치류를 보고, 그 둘 사이의 관계를 본 사람들. 그래서 이름을 붙인 사람들.

그 비를 통과해 달렸다.

젖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