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순성길
Distance
20.6km
Elevation
1565m
Difficulty
HARD

아침의 흥인지문에서 출발한다.
사람은 없고 돌만 남아 있다.
낙산으로 오르는 첫 1km에서 서울은 서울이기를 잠시 멈춘다.


20.57km. 네 봉우리. 하나의 문에서 출발해 같은 문으로 돌아온다.
누적 상승 1,565m를 네 개의 능선이 나눠 갖는다.
형태는 원이지만 질감은 네 번 바뀐다.

시작은 낮다. 흥인지문에서 낙산까지는 완만한 오르막이고, 능선이 먼저 오는 게 아니라 돌이 먼저 온다. 발밑의 장대석은 어두운 시간의 색이다.
낙산에서 서울이 한 번 열린다. 동측으로 용마산, 아차산. 남측으로 남산타워. 조망은 먼저 오는 법이다. 시계방향으로 달리는 러너에게 이 구간은 서문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혜화문 자리는 길 아래에 있고, 말바위로 오르면 성곽이 다시 두꺼워진다. 여기서부터 도성은 자신의 두께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북악 구간은 이 루프의 고지대다. 숙정문에서 북악으로 오르는 길은 두껍게 남아있는 조선의 돌 사이로 난다. 이 구간의 고도는 숫자로만 남는다. 정상 조망은 군사적 이유로 제한되고, 러너는 하늘만 본다.

성곽은 네 시대의 돌로 지어져 있다. 태조, 세종, 숙종, 그리고 20세기의 복원. 밝은 돌은 새 것이다. 어두운 돌 앞에서만 오래 서게 된다.
북악의 두께는 여기서 가장 선명하다. 옆으로 보면 돌의 몸이 있고, 이끼는 그 몸의 색이다.
오래된 돌은 빠르게 지나가는 발을 기억하지 않는다. 러너는 이것을 알고 오른다.


창의문으로 하강하면 북측 능선이 끝난다. 반환점은 아니지만, 몸은 반환점을 느낀다. 약 절반의 거리, 절반 이상의 상승.


인왕은 바위다. 북악이 돌의 두께라면, 인왕은 돌의 질감이다. 암반 위를 오르는 길이 짧지만 가파르고, 손을 쓸 줄 알아야 한다.
돈의문은 없다. 1915년에 헐렸다. 러너는 '터(址)'를 지난다. 지도에는 점으로 남아 있고, 땅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없는 문을 지나는 감각은 있는 문을 지나는 감각과 다르다.
인왕에서 내려오면 도성 바깥이다. 산의 경사를 따라 내려가고, 돈의문터를 지나 숭례문으로 향하는 동안 러너는 처음으로 평지를 만난다. 몸은 이 평지가 쉼이 아니라는 걸 안다.

숭례문을 지나며 도성은 다시 가팔라진다. 남산은 짧고 확실한 상승이다. 계단이 많고, 계단은 능선보다 다리를 더 빨리 태운다.

남산 봉수대에 서면 서울은 다시 한 번 열린다. 북악과 다른 방식으로. 북악이 하늘을 보여줬다면, 남산은 지붕들을 보여준다. 용산, 이태원, 한남의 능선. 이 루프에서 서울이 가장 넓게 보이는 곳이다.


광희문으로 하강하며 도성은 닫힌다. 남측 계단은 서측보다 길고, 다리는 마지막 2km를 위해 남겨진 에너지를 센다.


출발의 문으로 돌아온다. 같은 돌이지만 발은 이미 같은 발이 아니다. 도성은 닫혔고, 원은 하나의 문장으로 남는다.
Key Spots
10스퀘어 남산
서울 중구 소월로 33
